갈라타사라이 SK

 



[image]
'''갈라타사라이 SK'''
'''Galatasaray S.K.'''
'''정식 명칭'''
Galatasaray Spor Kulübü
'''애칭'''
Aslan,
Cimbom 혹은 Cimbombom,[1]
Sarı-kırmızlılar[2]
'''창단'''
1905년 10월 1일
'''소속 리그'''
터키 쉬페르 리그(Süper Lig)
'''연고지'''
이스탄불(İstanbul)
'''홈 구장'''
튀르크 텔레콤 스타디움(Türk Telekom Stadium)[3]
(52,650명 수용)
'''라이벌'''
'''페네르바흐체 SK - 이스탄불 더비'''
'''구단주'''
무스타파 젠기스(Mustafa Cengiz)
'''감독'''
파티흐 테림(Fatih Terim)
'''주장'''
페르난도 무슬레라 (Fernando Muslera)
'''공식 홈페이지'''

'''우승 기록'''
'''★★★★
쉬페르 리그 (1부)'''
(22회/최다 우승)
1961-62, 1962-63, 1968-69, 1970-71, 1971-72, 1972-73, 1986-87, 1987-88, 1992-93, 1993-94,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1-02, 2005-06, 2007-08, 2011-12, 2012-13, 2014-15, 2017-18, 2018-19
'''튀르키에 쿠파스'''
(18회)
1962–63, 1963-64, 1964-65, 1965-66, 1972-73, 1975-76, 1981-82, 1984-85, 1990-91, 1992-93, 1995-96, 1998-99, 1999-2000, 2004-05, 2013-14, 2014-15, 2015-16, 2018-19
'''쉬페르 쿠파'''
(16회)
1966, 1969, 1972, 1982, 1987, 1988, 1991, 1993, 1996, 1997, 2008, 2012, 2013, 2015, 2016, 2019
'''UEFA 유로파 리그'''
(1회)
1999-2000
'''UEFA 슈퍼 컵'''
(1회)
2000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자르데우(Jardel)
(2000년, From FC 포르투, 1705만 €)
'''최고 이적료 방출'''
바두 은디아예(Badou Ndiaye)
(2018년, To 스토크 시티 FC, 1600만 €)
'''최다 출장'''
뷜렌트 코르크마즈(Bülent Korkmaz) - 613경기(1987-2005)
'''최다 득점'''
메틴 옥타이(Metin Oktay) - 352골(1955-1961 / 1962-1969)
1. 개요
2. 역사
2.1. 2012-13 시즌
2.2. 2013-14 시즌
2.3. 2014-15 시즌
2.4. 2015-16 시즌
2.5. 16-17 시즌
2.6. 17-18 시즌
2.7. 18-19 시즌
2.8. 19-20 시즌
4. 선수
4.1. 명단
4.2. 유명 선수
5. 기타
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image]
홈 경기장인 튀르크 텔레콤 스타디움(Türk Telekom Stadium). 52,223명 수용.
아직 오스만 제국이 존재하던 1905년에 졸업생 알리 사미 옌(Ali Sami Yen 1886~1951)이 친구들과 함께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에서 결성한 축구 구단이다. 프랑스계 학교에서 배우던 이들이라 주요 구성원이 당시 '''귀족 자제'''들인 덕분에 자금력이 꽤 탄탄했다. 반대로 라이벌인 페네르바흐체 SK(Fenerbahçe)는 쉬크뤼 사라츠오울루(şükrü saraçoğlu, 1887~1953; 페네르바흐체의 옛 경기장 이름) 소위를 비롯한 초급 장교, 사병 같은 이들이 모여서 창단했고,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에 축구를 하면서 모인 베식타쉬 JK(Beşiktaş), 기타 대다수 터키 쉬페르리그 구단과 차원이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갈라타사라이 뜻은 갈라타(지역명) 사라이(궁전). 연고지 경기장 주변에 있는 탑을 이용한 이름이다. 그밖에 구단 이름을 아슬란(사자)이라 지으려고 했었던 점도 있어서인지 별명이 아슬란이다. 덕분에 라이벌 페네르바흐체(노란 카나리아), 베식타쉬(검은 독수리) 마스코트로 3파전을 벌이면서 이들 응원 구호용 그림들이 꽤나 과격하다. 대한민국 지지대 더비-수원 삼성 블루윙즈FC 서울경기에서 걸렸던 도발 걸개는 차라리 애교일 정도였다.
[image]
독수리가 카나리아 목을 도끼로 내리치려 하고 사자는 옆에서 겁먹은 얼굴로 떨고 있거나 사자가 카나리아와 독수리 목을 들고 늠름하게 포효한다든지, 카나리아가 뼈만 남은 사자와 날개가 잘려나가 땅에 떨어진 독수리를 두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든지 이런 그림들을 서로 걸고 서로를 야유한다. 다만 샤다라빠가 터키 여행에서 본 것에 의하면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쉬 서포터는 그나마 좀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페네르바흐체에 대하여 베식타쉬 서포터들이 워낙 반감이 심해서인지 그래도 둘이 같은 적(?)을 두고 있다는 점으로 페네르바흐체보단 서로 친하게 지내는 편인 듯. 이런 베식타쉬와의 관계도 2013년 9월에 벌어진 아타튀르크 경기장 폭동 사태 이후 옛말이 되어버렸다. 자세한 얘기는 베식타쉬 페이지를 참고.
이후 구단은 성장해 축구 뿐만 아니라 남녀 배구, 남녀 농구, '''장애인 농구''', 육상팀, '''브리지''', '''마술(馬術)''', 유도, 조정, 요트, 레이싱, 수영, '''수구''' 같은 종목에서도 팀을 보유한 거대 스포츠 클럽으로 성장했다. 정말 별에별 종목을 다 다룬다. 그래서 구단 이름도 FK(FUTBOL KLÜBÜ 터키어로 풋볼 클뤼뷔, 즉 축구 클럽)가 아닌 SK(Spor Klübü 스포르 클뤼뷔, 스포츠 클럽)으로 쓴다. 더불어 이건 이스탄불 라이벌인 페네르바흐체도 똑같은데 다만 또다른 라이벌인 베식타쉬 JK는 JK(Jimnastik Kulübü)로 쓰는데 체육클럽이라는 뜻으로 다른 이름을 쓴다.
이들 3개 팀의 이스탄불 더비는 터키 쉬페르리그에서도 가장 뜨겁기로 유명하다.그 유래는 귀족팀이던 갈라타사라이가 워낙에 재정이 빵빵해서인지 반대로 재정이 튼튼하지 못하던 다른 두 팀을 우습게 보았던 게 유래라고 한다. 그래서 돈 없는 팀이라고 팬들이 다른 팀을 야유하고, 다른 팀 팬들은 귀족 도련님들의 철없는 돈낭비팀이라면서 대꾸했다. 여하튼 1920년까지 갈라타사라이는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1패도 거두지 않았을 정도였으며 술탄컵 같은 당시 오스만 제국 휘하 축구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달리며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1922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귀족들도 사라졌고 졸지에 갈라타사라이도 이제 재정 문제에 빠지게 된다. 경기 성적도 비슷비슷해졌고, 무엇보다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의 이스탄불 더비는 터키를 주름잡는 유명한 리그이자 피파도 인정한 세계적인 더비가 되었을 정도로 이들의 더비 경기는 너무나도 뜨겁다.
갈라타사라이는 터키에서 최고 인기 구단이다. 서포터 수가 2천만, 심지어 5천만명이라는 주장마저 있을 정도이다. 터키에게 독립하자며 무력 시위와 독립운동(터키 입장에선 폭동과 테러)를 벌이던 쿠르드족 독립단체 PP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까지도 갈라타사라이 열혈 서포터였으며,교도소에서도 축구경기는 꼭 본단다. 평소에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하여 박대한 교도관들까지도 축구경기가 있을 땐 외잘란과 같이 축구를 보며 환호했다.
터키계들이 많은 독일 베를린에서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자매팀도 창단하려다가 UEFA 규정으로 유럽 리그에서 자매팀은 불가한다고 하여 흐지부지된 적도 있다. 똑같은 경우로 AFC 아약스가 벨기에에서 자매팀 창단하려다가 역시 이 규정으로 포기하던 것. 하지만 비유럽 리그는 상관없기에 아프리카 남아공케이프타운 아약스 케이프타운 FC(Ajax Cape Town FC)라는 팀을 창단했었다.(정확히는 종전 남아공 2개 구단을 1999년 통합 재창단한 것) 그러다가 2020년 이 구단을 팔아서 자매팀이 없다. 구단도 이름을 케이프 타운 스퍼스 (Cape Town Spurs F.C.)로 바꿨다.

2. 역사


클럽 국제 대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56-57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옛 이름인 유러피언컵에서 이스탄불 리그 시절 팀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 루마니아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게 2전 전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이 1962~63 유러피언컵에서 구단 및 터키 구단으로 첫 8강(지금으로 치자면 16강)에 진출했다. 비록 강호 AC 밀란에게 2전 전패 1득 8실점으로 8강전에서 호되게 탈락했지만. 그래도 첫 8강이라는 성적은 대단한 쾌거였다. 이후론 대회에서 1라운드 탈락을 겪다가 1969-70 시즌에 다시 한번 8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다시 유러피언컵 토너먼트에 오르기 위하여 20년을 기다려야 했다. 클럽 국제대회 최고 성적은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시절 거둔 4강이다. 당시 주전인 탄주 콜라크(Tanju Çolak,1963~ )는 대회 MVP을 차지하고 AC 밀란 등 여러 구단으로 스카웃되었다. 갈라타사라이에서도 역대 최다 득점 2위[4]를 기록한 터키 축구 영웅이었으나, 2000년 초반 장물 판매일에 연루되어 입건되었다가, 2007년 다시 자동차 장물 밀매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 구속되면서 일시에 추락한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와서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에 들어가 정계에서 활약 중이다.
다만 당시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유러피언컵은 지금과 달랐다.지금처럼 1차 조예선이 아니라 1팀씩 맞붙은 대회였다. 유러피언컵 1차전에서 오스트리아 라피드 빈을 상대로 1승 1패를 거둬 골득실차(3-2)로 앞서 16강에 진출했다.16강전에서 스위스 Neuchâtel Xamax에게 원정에서 0-3으로 대패했지만 홈에서 5-0으로 뭉개며 역시 골득실차로 앞서 8강에 진출해 AS 모나코와 맞붙게 되었다.1-0,1-1 이렇게 1승 1무로 4강에 진출한 것. 딱 3팀을 상대로 4강에 올라온 셈이니 현재 챔피언스리그보다 4강 진출이 좀 더 쉬운 셈이었다. 4강전에서 맞붙은 건 또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지금이야 갈라타사라이가 어렵게 상대하지 않을 팀이지만 이 때만 해도 유럽 강호 구단이었다. 85~86 유러피언컵 우승까지 한 팀답게 갈라타사라이를 홈에서 4-0으로 뭉갰다. 홈에서는 1-1로 비겼고 이렇게하여 4강에서 멈췄다.(여담으로 결승에 올라간 부쿠레슈티는 AC 밀란에게 4-0으로 대패해 준우승했다.)
이후 유로파리그 전신 중 하나인 유로컵 위너스컵에서 1991~92시즌에 8강에 진출했다.구단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은 바로 파티흐 테림 감독 하의 1999~2000시즌. 리그 우승팀으로서 챔피언스리그에 나왔지만 첼시 FC, 헤르타 베를린에게 밀려 조 3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AC 밀란을 4위로 밀어내면서 지금은 UEFA 유로파 리그로 이름이 바뀐 UEFA 컵에서 진출권을 얻어냈는데 여기 이 때만 해도 참가팀이 훨씬 적어서 1팀끼리 2경기를 치루던 방식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마요르카 등을 연이어 제치고 결승까지 올랐고 결승에서아스날 FC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터키구단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유러피언 클럽컵 우승 기록이다. 그리고, 그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 CF 마저 UEFA 슈퍼 컵에서 2:1로 이기며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 더군다나 홈도 아닌 중립 경기장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싸워서 이긴 성과였다. 더더욱 놀라운 점은 당시에는 경영 악화로 부도 위기까지 몰려서 승리 수당이라든지 돈까지도 선수들에게 주질 못했었다. UEFA 컵 우승하면 돈을 주겠다고 선수들에게 하소연할 정도로 사정이 나빴음에도, 기어코 우승을 차지하면서 두둑한 우승 상금에 온갖 스폰서 계약금도 받았고 별도로 터키 축구 협회가 주는 상금도 받으면서 밀렸던 돈을 지급하고, 구단도 재정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리즈 유나이티드와 갈등을 빚게 된다. 리즈시절 잘 나갔던 리즈는 이때 UEFA 4강에 진출하여 갈라타사라이와 경기를 가졌는데, 이스탄불 원정을 갔던 리즈 팬들 중 2명이 경기 전에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다. 체포된 범인들 증언에 따르면 리즈 서포터들이 터키 국기로 밑닦는 자세를 하면서 냄새나는 칠면조라고 욕했기에 욱해서 그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결국 경기는 갈라타사라이가 2-0으로 이겼고, 리즈 원정에서도 2-2 로 비기면서 갈라타사라이가 결승에 올랐다. 이 사건 이후로 리즈는 갈라타사라이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5] 하지만 그 뒤로 리즈는 부진 속에 결국 2부리그 및 3부 리그까지 강등되면서 갈라타사라이와 20년 가까이 되도록 만날 일이 없기에 라이벌이고 뭐고 갈라타사라이에선 잊어버렸을 듯 하다.
챔피언스리그 개편이후 처음으로 조예선을 넘어선 건 2000-01 시즌 챔피언스 리그였다. 조별 리그에서 SK 슈투름 그라츠(오스트리아)에게 원정에서 0-3으로 대패당하기도 했지만 레인저스 FC를 상대로 3-2,0-0을 거두면서 이게 유리해졌다. AS 모나코와 1승 1패, 슈투름그라츠와 1무 1패를 거두면서 2승 2무 2패로 레인저스와 동률을 이뤄 골득실에서도 밀렸지만 레인저스를 상대로 승자승에서 앞서 슈투름그라츠에 이어 조 2위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1988~89 시즌 이후 12년만에 챔피언스리그 2라운드를 올라간 셈이었다.
당시만 해도 16강전도 16강 조예선으로 4팀이 6경기를 가져야했는데 16강전에서 갈라타사라이는 AC 밀란,파리 생제르맹(물론 지금과 달리 카타르 국왕이 구단주가 아닌 시절이라 경제적으로 취약하던 시절), 그리고 당시에 프리메라리가 우승으로 분위기 좋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만나 고전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홈 3경기를 모두 이겨 데포르티보와 같은 3승 1무 2패를 이뤄 조 2위로서 8강까지 올라갔다! 12년전과 달리 더더욱 어렵게 8강에 올라간 셈. 이렇게 8강까지 올라가 레알 마드리드와 재격돌하면서 1승 1패(3:2 승, 0:3 패)를 주고 받은 끝에 8강에서 멈췄다. 당연하다고 보겠지만 당시 레알 마드리드 주축들을 보면 안방에서라도 이긴 갈라타사라이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 당시 유럽 클럽 랭킹 10위권에 드는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뒤론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 예선에서 늘 주저앉는다. 또한 유로파 리그에서도 16강을 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대신 자국 무대에서의 활약은 뛰어나다. 애초에 터키 쉬페르 리그는 이스탄불의 빅3인 '페네르바흐체', '베식타쉬', '갈라타사라이'나 트라브존의 트라브존스포르를 제외하곤 우승 경력이 있는 팀이 '''없었다'''. 그런데 신영록이 한때 뛰었던 부르사스포르가 2009-10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2010-11 시즌 17라운드 중반부까지 바로 세뇰 귀네슈감독이 이끄는 트라브존스포르가 리그 1위를 달리고 페네르바흐체가 추격 중이다. 반면 갈라타라사이와 라이벌 베쉭타쉬(28라운드까지 리그 7위)는 부진하다. 중반부만 해도 트라브존스포르와 1위 경쟁을 벌이던 부르사스포르는 10점 이상 떨어지면서 리그 3위로 밀려났다.
감독은 바로 전 FC 바르셀로나 감독인 프랑크 레이카르트였었다. 그러나 리그 8위로 부진하면서 16개월만에 해임되었다. 새로운 감독은 바로 발칸의 마라도나라고 불리우던 게오르게 하지. 이미 2004-05 시즌에 갈라타라사이 감독을 맡아 FA컵인 튀르키예 쿠파스를 우승시켰으나 리그 우승이 좌절되면서 해임된 바 있다. 갈라타사라이가 선수 시절 마지막을 빛낸 곳이며 은퇴도 여기에서 했던지라 팀에 애정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와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17라운드까지 10위에 머문 끝에 결국 하지 감독도 짤렸다...
그러나 팀이 여전히 엉망이라 리그 28라운드까지 14위로 밀려나있다. 15위인 시바스스포르[6]와 승점 차가 2점이라 더 추락할 가능성도 크다(그나마 강등권인 16위와 승점 9점 여유가 있긴 하다). 이런 부진 속에 서포터들이 구단주의 차량에 돌을 던지고 화염병까지 구단 사무소 입구에 내던질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 막판에 겨우 리그 9위까지 올라왔으나 유로파 리그 진출권도 물건너갔다. 결국 유로 2008에서 터키를 4강에 진출시키고 2000년에 갈라타사라이에게 유에파컵 우승을 안겨준 파티흐 테림 감독이 5월 말에 재영입되었다.
그리고 현재 페네르바흐체와 베쉭타쉬가 승부조작 스캔들 때문에 자금이 동결처분(게다가 회장들이 줄줄이 구속되어서 최대 90년 이상까지 복역할 수 있다!))돼서 영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분노의 영입을 시전중이다. 요한 엘만더, 페르난도 무슬레라, 펠리페 멜루 등등.. 이런 영입에 힘입어선지 2011-12 시즌은 26라운드까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라이벌 페네르바흐체와 승점 차가 6점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2012년 2월 26일에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쉬와의 경기에서 후반 45분까지 팽팽하게 2:2를 유지하다가(심지어 갈라타사라이측에서 자책골이 나오기도 했다) 후반 46분에 조한 엘만데르가 한 골을 추가하면서 승리했다. 헌데 터키에선 베식타쉬가 그 정도로 견딘 게 대견하다는 게 중론... 아무튼 3월 1일 리그 28차전까지 63점으로 리그 1위로 2위인 페네르바흐체와 승점 차가 9점으로 제법 크게 벌려 놓았다. 3월 17일에 페네르바흐체 홈 경기에서 가졌던 경기도 초반에 어이없게 두골 연속 허용하면서 실책을 범하다가 전반에 조한 엘만데르가 한 골, 또 후반전 종료 10여분전에 또 한 골을 뽑으면서 숙적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만들었다. 종료직전에 주어진 프리킥에서 갈라타사라이가 득점할 절호의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아쉽게 실패. 결국 갈라타사라이는 9점 승점차로 리그우승시 확실시되고있지만 승부조작 스캔들로 플레이오프가 도입됐기때문에 우승은 할수가 없다.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서 1위를 해야 우승이 카운트되는 상황이다. 플레이오프인 쉬페르 피날에선 4차전까지 2승 1무 1패를 거두며 3승 1패인 페네르바흐체에게 플레이오프 성적은 뒤졌지만, 정규시즌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면서 5점의 우세를 안고 들어갔기 때문에 선두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6경기를 치러야 하기에 남은 2경기 여부에 따라 우승이 확정된다.
5월 6일 벌어진 5차전 안방 경기에서 베식타쉬 JK에게 2:2로 비겨버렸다. 후반 10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실점한 2골은 두고두고 아쉽게 되었고 페네르바흐체가 트라브존스포르 원정에서 3:1로 이겨버리는 통에 4승 1패를 기록, 승점 1점까지 추격했다. 마지막 경기가 바로 철천지 원수인 페네르바흐체와의 더비라서 귀추가 주목되었다. 전 터키의 이목이 집중된 더비는 0:0 무재배로 끝났고, 갈라타사라이는 승점 1점 차로 페네르바흐체를 따돌리고 통산 18번째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2.1. 2012-13 시즌


2012-2013 쉬페르 쿠파스에서 전 시즌 튀크키예 쿠파스 우승팀 페네르바흐체를 3-2로 꺾고 시즌 첫 우승컵을 손에 쥐며 순조롭게 출발한다.
12-13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에서는 H조에 들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C 브라가, 루마니아의 CFR 클루지와 한조가 되었다. 첫 경기 맨유 원정에선 0-1로 졌다. 하지만 맨유 원정에선 고전해도 안방에서 맨유를 상대로 반드시 설욕했던 과거 전적을 보면 다른 2팀과의 경기 여부가 더 중요할 듯. 하지만 유달리 포르투갈 클럽에게 약한 징크스가 보이는 게 불안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브라가에게 2차전 안방 경기에서 0-2로 패배했다. 클루지와 유로파 리그 진출권이 걸린 3위 자리나 다툴지도... 그런데,
3차전 클루지와의 안방 경기조차도 1-1로 비겼다. 자책골에, 페널티골을 놓치면서 비긴 경기로 졸지에 승점 1점으로 꼴지로 추락해 유로파 리그조차 불안한 형편이다. 그나마 4차전 클루지 원정에서는 3:1로 승리를 거두면서 2위로 올라섰으나 4점으로 꼴찌로 추락한 브라가보다 승점 1점 차밖에 나지 않는다. 클루지 안방 경기를 비긴 걸 두고두고 후회할 듯. 이 경기만 이겼더라면 6점으로 브라가 원정을 져도 조 2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브라가가 득실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며 유달리 포르투갈 클럽에 약한 터키 클럽 성격과 달리 안방에서 잉글랜드 클럽에 강한 터키클럽 장점(이전에도 챔스리그에서 맨유 원정은 졌어도 안방에서 설욕했다)을 살렸더라면 11년 만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차전 안방에서 맨유를 1-0으로 이기면서 3위로 올라섰다. 예상을 뒤엎고 클루지가 3:1로 브라가를 이긴 덕분에. 대신 마지막 6차전인 브라가 원정을 반드시 이겨야할 상황에 놓였다. 이겨야지 자력으로 16강이 가능하며 비긴다면 클루지와 맨유전 경기 여부를 봐야한다. 클루지와 같은 승점 7점에 득실에서 1점 밀려 있기 때문이다. 또 한번 클루지 원정에서 비긴 게 한이 될 듯... 역시 잉글랜드에겐 안방에선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다만, 반대로 그동안 포르투갈에겐 약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마지막 6차전 브라가 원정이 고비이다.
운명의 6차전. 먼저 실점을 당했지만 맹공을 퍼부으면서 A. 일마즈와 B. 일마즈, 두 일마즈가 차례로 골을 터뜨리면서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둬들이면서 승점 10점을 차지했다. 클루지와 같은 승점이지만 클루지를 상대로 1승 1무로 앞섰기에 조 2위로 16강을 차지했다. 2001년 8강 진출 이후로 11년 만에 거둔 진출이다.
16강전 대전추첨에선 FC 샬케 04와 맞붙게 되었다. 갈라타사라이로선 해볼 만하다는 반응이지만 샬케도 마찬가지라서...1차전 안방 경기에선 부락 일마즈가 전반에 먼저 골을 넣었으나 추격골을 허용하며 1:1로 마무리되면서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1월 이적시장에서 웨슬리 스네이더, '''드록바'''를 영입을 하면서 전력을 보강했다. 드록바는 22차전 쉬페르리그 데뷔경기 교체출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2:1 승리에 기여했으며 팀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3월 13일에 가진 챔스 16강 2차전 샬케 원정에서 전반전 세트피스로 선취골을 허용했으나 샬케에서 4시즌 동안 맹활약했던(2003~2007) 하미트 알틴톱의 멋진 중거리 동점골이 터지며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이어서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대단한 득점력을 보이는 리그 득점 2위 부락 일마즈의 역전골이 터졌다. 라인을 내린 후반전에는 샬케의 맹공에 여러차례 위기를 겪으며 동점골을 허용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나도 2무, 원정 다득점 우위로 갈라타사라이가 8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으나, 갈라타사라이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막판 불루트의 쐐기골로 승리를 거두며 12년 만에 챔스 8강에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 한편 표가 없어서 원정 팬들은 땅굴을 파려고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3월 15일 열린 챔스 8강 조추첨에서 12년전 8강 상대였던 레알 마드리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주제 무리뉴와 그의 두 애제자인 디디에 드록바베슬리 스네이더르의 재회, 또한 양팀에는 현재 챔스 득점 공동 선두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부락 일마즈가 있다. 물론 갈라타사라이는 12년 전에도 안방에서 호화 군단 레알 마드리드를 이겼던 것처럼(맨유도 90년대에서 12~13 시즌 조 예선까지 갈라타사라이 원정에서 줄곧 졌다) 안방에선 레알 마드리드를 이길 가능성도 있지만 원정이 고비일 듯. 비록 경기 예상은 레알에게 많이 기운다는 평이 있어도 외적으로는 나름의 떡밥이 있는 매치인 셈이다.
4월 4일 챔스 8강 1차전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0:3 완패를 당했다. 우습게도 12년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전과 똑같은 점수 차였다. 언뜻 보기에 슈팅 수는 비슷비슷했으나 실제로 위협적인 찬스는 레알 마드리드가 훨씬 많았으며, 베슬리 스네이더르는 중원에서 활약은커녕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교체당했고, 그나마 공수양면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던 디디에 드록바라파엘 바란에게 애를 먹어야 했다.[7] 엎친데 덮친격으로 주포인 부락 일마즈마저 석연찮은 시뮬레이션 경고를 받으며 2차전을 결장하게 되었다.[8] 또한 수비의 한축을 담당하던 온케우 역시 경고누적으로 2차전 결장. 잃은것이 많은 패배였다.
쉬페르리그 28라운드 메르신 이드마유르두와의 경기에서 파티흐 테림 감독이 심판의 판정에 격노하여, 그라운드에 들어가 공을 던지는 등 강하게 어필한 끝에 퇴장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테림 감독은 이후에도 심판을 비난하며 판정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고 원색적으로 드러냈다. 사실 이 경기에서 주심의 판정이 상당히 큰 논란이 되었었는데, 일관성없는 주심의 판정이 계속되었기 때문에(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을 집어던진 파티흐 테림 감독은 즉각 퇴장시켰으나, 똑같은 행동을 하였던 메르신 이드마유르두의 선수에게는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기내내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주심의 판정 하나하나에 일일이 벌떼같이 몰려가서 항의하며 실갱이를 벌였다.
그리고 4월 10일, 정말로 12년전 재현이 되어 홈에서 열린 챔스 8강 2차전에서 3:2로 이겼으나 종합 스코어 3:5로 탈락하게되었다. 경기초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선취골로 인해 순식간에 5골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그 이후 아무런 일 없이 전반전이 종료되어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반 57분 에부에의 골을 시작으로 70분대 초반 베슬리 스네이더르, 디디에 드록바의 연속 골이 터지며[9] 극장을 만드나 싶었으나 더 이상 골을 넣질 못했고, 결국 후반 추가 시간 호날두의 골을 허용하며 이번 챔피언스 리그 행보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나마 후반전에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듯.
그런데 터키축구연맹이 쉬페르리그 28라운드에서 테림 감독의 어필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할 것을 결정, 9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 위원회는 9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의 사유를 밝히면서, 주심에 대한 비신사적 행위(1경기 정지), 주심 모독(3경기 정지), 사이드라인 안으로 무단으로 진입(3경기 정지) 그리고 작년에 받았던 징계의 집행유예(2경기 정지)가 모두 고려된 것이라 설명했다.
파티 테림 감독 이외에도 수석 코치인 하산 샤쉬 코치가 2경기, 위미트 다발라 코치가 1경기 씩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갈라타사라이의 라이트 풀백인 사브리 사르오울루도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손가락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 빙빙 돌리며 주심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고, 이를 대기심이 적발해 사브리 또한 1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2위 페네르바체와의 승점차를 4점차로 유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갈라타사라이지만, 감독과 수석 코치 없이 다음 리그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은 앞으로의 우승 경쟁에서 상당한 악조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갈라타사라이 구단 측은 이러한 축구 협회의 조치에 대해 즉각 제소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3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페네르바체와 같은 결과만 얻어도 리그 2연패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스탄불 원정을 앞둔 페네르바체에 어떤 기회도 남겨주지 않았다. 홈에서 시바스포르를 4-2로 제압, 이스탄불 BB SK에 2-0 원정패를 당한 '영원한 라이벌' 페네르바체 SK와의 간격을 승점 10점차로 벌리며 통산 19번째 터키 쉬페르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2.2. 2013-14 시즌


시즌을 앞두고 갈라타사라이는 임대계약을 맺고 있던 펠리페 멜루와 우무트 불루트를 완전영입하였고, OSC 릴에서 오렐리앙 체주를 영입하였으며, 알페르 포툭을 둘러싼 페네르바흐체와의 영입경쟁에서 밀리자, 곧바로 시바스스포르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던 에르만 크르취를 데려오면서 팀 전력보강에 성공했다.
또한 팀 내 잉여자원들에 대한 정리 또한 칼같이 이뤄졌는데, 임대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카짐-카짐 리차즈를 부르사스포르로 보냈고, 앞에서 언급한 에르만 크르취를 2경기만 써보고 바로 에스키세히르스포르로 이적시켰으며, 새로이 바뀐 용병제도(기존에는 6명 선발출장, 2명 교체명단 등록가능, 2명 엔트리제외의 방식이었으나, 올 시즌부터 6명 선발출장 및 교체명단 등록가능, 4명 엔트리제외의 방식으로 변경되었다)에 의해 입지가 어중간했던 요한 엘만데르를 노리치 시티로 임대시켰다. 이적시장 막바지에는 19세 이하 월드컵 대회에서 기량을 과시했던 스포르팅 리스본의 떠오르는 신예, 브루마를 1천만 유로에 영입하면서 기세를 올렸고, 백업 전력으로 평가받는 골키퍼 아이쿠트 에르체틴과 미드필더 아이든 일마즈와도 연장계약체결에 성공했다.
터키 국가대표팀의 계속되는 부진으로 인해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행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자 갈라타사라이의 위날 아이살 회장은 터키 축구협회의 요구대로, 2014년 5월까지 파티흐 테림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는 것에 대해 전격적으로 수용하였다. 갈라타사라이-페네르바체 파벌간의 대립으로 인해 팀워크의 'ㅌ'자마저 실종된 것으로 보이는 국가대표팀을 파티흐 테림 감독의 강한 카리스마로 재건하겠다는 터키 축구협회의 행보는 이미 시한부 감독체제의 쓰디 쓴 맛을 보았던 한국축구의 행보와 유사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쪽의 경우 갈라타사라이 감독 본업을 내치지 않는 '겸임'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른 면이 있다.
프리시즌에 참가한 에미레이츠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올시즌의 전망을 밝게 했고, 개막전부터 승격팀에게 처참하게 발린 라이벌 페네르바체와는 달리, 가지안텝스포르와의 홈 개막전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리그 3연패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시작하는 듯 했으나, 2라운드 부르사스포르와 3라운드 에스키세히르스포르, 4라운드 안탈리아스포르와의 경기에서 연거푸 무재배를 하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는 상태이다.
챔피언스 리그 조편성에서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코펜하겐과 함께 B조에 소속되었다. 전문가들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양강체제를 예측하면서도, 갈라타사라이가 코펜하겐을 상대로 2승을 챙기고, 악명 높은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갈라타사라이의 16강 진출도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전망했다. 갈라타사라이 입장에서는 지난 시즌 8강전에서 만난 레알 마드리드를 내심 떨어뜨리고 싶어하는 분위기인데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조별리그 첫 경기를 레알 마드리드와 홈에서 치르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조별 리그 1라운드 홈 경기에서 전반전의 우세한 분위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어이없는 선취골을 허용한데 이어, 디디에 드로그바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후반전에 급격히 무너지며 1-6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스코어는 베식타쉬가 07-08 챔피언스 리그 리버풀 FC 원정에서 0-8 참패를 당한 이후 최악의 경기결과이다. 악명높은 홈 구장의 이점도 무색하게 만든 이 굴욕적인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주전 수비수 세미 카야와 베테랑 미드필더 하미트 알틴톱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 때문이었다. 특히 세미 카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용된 눈케우의 경우, 전반전에는 센터백으로서 쓸데없는 개인기(?)를 선보이며 갈라타사라이 수비진에 필요없는 불안감을 증폭시켰으며, 후반전에는 마치 정신줄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추가실점의 발판을 연이어 제공했기 때문에 이 날 경기의 A급전범으로 지목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눈케우 외에도 베스트 11으로 선발출장한 전원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선보였으며, 유일한 만회골도 교체출장한 노르딘 암라바트와 우무트 불루트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여튼 갈라타사라이로서는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결과가 나왔으며 이미 터키에서 '6alatasaray'라는 식으로 온갖 조롱을 받고 있는 상황.
쉬페르리그 5라운드 이스탄불 더비, 베식타쉬 원정에서 선취골을 허용하고도 디디에 드로그바의 연속골이 터지면서 2-1로 앞서나갔다. 그리고 경기종료직전, 펠리페 멜루가 거친 백태클로 퇴장당하면서 양팀 분위기가 격앙된 와중에 멜루가 관중들을 향해 벗은 유니폼을 흔들어 제끼며 도발했기 때문에 격분한 베식타쉬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마구잡이로 난입하면서 일이 커져버렸다. 결국 양팀 선수단과 심판진들 모두 철수, 경기는 그대로 중단된 채 끝이 나 버렸다. 그리고 관중들을 도발한 펠리페 멜루는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9월 24일, 파티흐 테림 감독을 계약 해지 형식으로 전격 경질했다. 위날 아이살 회장은 테림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이 무산되면서 경영진이 구단의 미래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실상은 리그에서의 부진한 성적(4경기 1승 3무)과 챔피언스 리그 레알 마드리드전 대패의 책임을 물어 경질한 것으로 보인다. 9월 28일 리그 6라운드 차이쿠르 리제스포르와의 홈 경기에는 이러한 구단의 결정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과 분노가 그대로 묻어나 있었고 경기는 1-1, 또 다시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리고 테림의 후임은 구단의 레전드 하칸 쉬퀴르가 말한대로 前 멘체스터 시티의 감독 만치니였으며, 9월 30일부로 갈라타사라이와 3년간 계약을 맺었다. 계약 직후 수석 코치였던 하샨 샤쉬와 위미트 다발라도 해임되었으며, 그들의 빈자리는 투가이 케리모을루가 채우게 되었다. 구단에서 오랫동안 뛰어왔던 선수 출신이자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이며, 파티흐 테림 사단의 손과 발이었던 이 두 사람마저 팀을 떠나게 되면서 역시나 '색깔 지우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0월 2일에 벌어진 유벤투스 원정 경기에선 드로그바가 먼저 골을 기록했고, 이내 내리 2골을 실점하면서 이대로 역전패하나 했으나 우무트 불루트가 88분 기적 같은 동점골을 만들어내면서 2:2로 비겼다. 같은 1무 1패이지만 코펜하겐에게 득실에 밀려 조 꼴찌로 밀려나 있는 상태. 그러나 최대 고비였던 유벤투스 원정에서 일단 비기면서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의 희망을 살렸다.
그러나 10월 6일에 벌어진 7라운드 아키사르 벨레디예스포르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7라운드까지 리그 13위까지 추락, 쉬페르 리그를 좌지우지하던 명성을 날려먹고 있다. 1승 4무 1패. 라이벌 페네르바흐체와 베식타쉬가 5승을 기록하면서 리그 1, 2위를 차지한 거랑 대조적.
3차전 코펜하겐과의 홈 경기에서는 에보우에의 맹활약 속에 멜루, 스네이더르, 드록바가 전반에만 3골을 합작하며 결국 3-1로 완승, 조 2위로 올라섰다. 스네이더르가 만치니 감독 체제 하에서 예전의 기량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는 점이 분명 고무적이지만, 이번 경기에서도 이어진 부락 일마즈의 부진은 만치니 감독에게 있어 또 하나의 숙제로 남겨졌다.
4차전 코펜하겐 원정에선 전반 초반 선제골을 얻어맞더니 결국 0-1로 허무하게 패했다. 그나마 같은 1승 1무 2패이지만 코펜하겐을 득실로 앞서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4위로 밀려난 유벤투스(3무 1패)가 남은 2경기 여부에 따라 16강 진출 희망이 있기에 남은 2경기도 총력을 다해야할 판국이다. 레알 마드리드 원정이 고비.
코펜하겐 원정 이후 11월 10일(현지날짜), 주목을 모았던 페네르바체와의 쉬페르리그 11라운드 경기에서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0-2로 격침당했다. 체주의 핸들링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줬고 이를 엠레 벨로조을루가 실수없이 차넣으면서 선제골을 실점당한 이후에도 전혀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후반전에 크리스티안 바로니에게 추가골을 얻어맞으며 무기력하게 패배한 것이다. 그나마 후반전 종료직전, 메흐메트 토팔의 핸들링 파울을 유도해내면서 펠리페 멜로가 페널티킥을 찼으나, 이마저도 상대 골키퍼 볼칸 데미렐에게 막히고 말았다. 이 경기 또한 스네이더와 무슬레라의 부상공백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 그리고 이 패배로 갈라타사라이는 카드쿄이(페네르바흐체 연고지) 무승 징크스가 15년째에 이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카드쿄이에서 페네르바체에게 승리를 거둔 날은 정확히 1999년 12월 22일이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5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모스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가지며 전반전까지 1:1로 팽팽히 맞섰으나, 후반전에만 내리 3골을 실점하며 1:4 참패, 조 3위로 추락했다. 골키퍼 에라이 이쉬칸은 경험부족 및 기량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며 무슬레라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고,[10] 조별 리그 최종전 유벤투스와의 안방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건곤일척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12월 10일, 유벤투스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그 동안 잘 사용하지 않았던 쓰리백 전술에 리에라와 에보우에가 윙백으로 기용되는 매우 수비적인 전술로 경기에 임했다. 유벤투스 또한 매우 수비적인 자세로 서로 이렇다 할 공격 없이 진행되다가 결국 폭설로 전반 31분 만에 연기되었다. 현지시각 12월 11일 오후 3시에 재개된 경기는 그대로 전반 31분부터 시작했으며[11] 양 팀 모두 똑같은 포메이션과 수비적인 전술 하에서 재개되었으나, 끊이지 않는 폭설 속에 난전 양상으로 흘러갔다.[12] 그렇게 실날 같은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듯 했던 갈라타사라이는 후반 40분, 드록바가 떨궈준 헤딩 패스를 스네이더가 드리블하면서 찬 슛이 유벤투스의 명수문장 부폰을 가로질러 골대 왼쪽 구석으로 그대로 빨려들어가면서 1-0, 85분 동안 유벤투스의 얄미웠던 10백 경기 운영보다 한 술 더 뜨는 경기 지연 작전을 펼쳐 결국 그대로 경기 종료. 유례가 없었던 1박 2일간의 혈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별 리그 B조 2위로 기적과도 같이 16강 대열에 합류하면서 팀 역사상 처음이자 터키 쉬페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2년 연속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더불어 이전에 2년 연속 막대한 구단주 체제의 맨시티를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조차 이끌지 못했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으로서도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올랐다.
추첨 결과 16강에서 첼시 FC와 붙게 되었다. 추첨 전 첼시의 감독인 무리뉴가 애제자인 드록바가 있는 갈라타사라이를 만나고 싶다고 밝혔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작년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8강전에서 갈라타사라이를 상대한 무리뉴는 올 시즌 첼시를 이끌고 또 다시 갈라타사라이를 상대하게 되었으며, 드록바로서는 2년만의 스탬포드 브릿지 방문이다.
12월 18일 열린 투르키예 쿠파스(Türkiye Kupası, 터키의 FA컵) 5라운드 경기에서 발륵케시르스포르를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고 8강 조별 리그에 무난히 안착했다. 특히 올 시즌 투르키예 쿠파스는 한 마디로 충공깽이라 말할 수 있는데, 4라운드에서 페네르바흐체와 베식타쉬, 그리고 트라브존스포르가 2부 리그 격인 PTT 1. Lig 팀들에게 모두 발목이 잡히며 탈락했기 때문이다.[13] 이 때문에 올 시즌 갈라타사라이가 투르키예 쿠파스에서 우승컵을 챙길 확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12월 28일 열린 카이세리 에르지예스포르와의 전반기 마지막 라운드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며 승점 33점으로 리그 2위에 오르며 전반기를 마쳤다. 다사다난으로 요약할 수 있는 갈라타사라이의 이번 시즌 전반기는 1-6 참패와 파티흐 테림의 경질이라는 시련을 딛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벤투스를 제치고 끝내 16강에 올랐으며, 리그에서는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결국 리그 2위에 오르며 비교적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비시즌기간동안 터키항공이 주최하는 안탈리야 컵 경기에도 참가하여 경기감각을 조율하였다. 트라브존스포르, 셀틱, 아약스가 참가한 이 대회에서 아약스를 2-1로 물리쳤고, 결승전에서는 셀틱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5-4로 이겨 우승을 차지하였다. 영입 및 방출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엔긴 바이타르를 차이쿠르 리제스포르에 임대로 보냈고, 세르잔 이을드름은 부르사스포르로 갔다.[14] 그라스호퍼 취리히의 신예 이젯 하이로비치를 영입했고(2014년 1월 8일), 1월 18일에는 카이세리스포르의 살리흐 두르순(Salih Dursun)과 부자스포르(Bucaspor, )의 우무트 귄도안(Umut Gündoğan)을 영입하며 부지런히 스쿼드를 늘리고 있다. 1월 21일에는 브라질 그레미우의 전도유망한 92년생 레프트 풀백 알렉스 텔레스(Alex Telles), 1월 29일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센터백 코라이 귄터를 데려왔다. 그리고 알베르트 리에라를 계약 상호 해지 형식으로 방출했다. 여기에 다니 눈케우를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임대 형식으로 베식타쉬로, 장기부상당한 브루마는 가지안텝스포르로 임대보냈으며, 노르딘 암라바트 또한 말라가로 6개월간 임대보냈다. 이적시장 막판에는 마니사스포르의 미드필더 오우즈한 카야를 영입하고, 94년생 아르헨티나 수비수 루카스 온티베로도 영입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한 겨울 이적시장을 보냈다.[15] 이적시장이 끝난 이후에도 갈라타사라이의 '분노의 영입'은 계속되어 보카 주니어스의 기예르모 부르디소와 에스키세히르스포르의 베이셀 사르 마저 영입했다.
이번 시즌 갈라타사라이의 이적시장 행보는 예년과 달리 검증된 해외 빅리그 플레이어를 영입하기보다는[16]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올 시즌 갈라타사라이가 젊은 선수들 영입에 쏟은 돈만 해도 벌써 2천만 유로가 넘으며,# 그로 인해 기존에 있던 선수들의 연쇄 이동을 유발시킨 것이다. 한편, 이러한 영입 및 방출작업로 인해 어린 선수들의 적응 문제 등을 우려하는 언론의 질문에 만치니 감독은 '디디에 드록바와 사브리 같은 베테랑들이 잘 이끌어줄 것이다' 라며 태평한 반응을 보였다.
1월 15일, 투르키예 쿠파스 8강 그룹별 리그 첫 경기였던 토캇스포르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였으나, 기대주 브루마가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상을 당하는 불운이 겹쳤다. 최소 6개월간 출장하지 못하며 브라질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건 물론이고, 향후 선수생명에도 큰 지장을 끼칠만한 부상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브루마를 드록바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는 갈라타사라이 입장에서는 속이 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월 22일 열린 투르키예 쿠파스 세 번째 경기에서는 아이든 이을마즈까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2월 2일 열린 부르사스포르와의 19라운드 홈 경기에서 베슬리 스네이더르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6-0 대승을 거두었다. 이 날은 갈라타사라이의 레전드 메틴 옥타이[17]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골이 들어갈 때마다 장내 아나운서가 골을 넣은 선수의 이름 대신에 메틴 옥타이의 이름을 관중들이 연호하게끔 유도하였다.
2월 5일, 투르키예 쿠파스 8강 그룹별 리그 토캇스포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승리,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와 함께 2월 8일 열린 에스키세히르스포르와의 20라운드 홈 경기에서도 3-0으로 승리하여 1주일 동안 3경기에서 12득점, 무실점을 기록하며 화력을 과시했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충격과 공포의 2연패를 기록한 1위 페네르바흐체를 승점 4점 차까지 추격했다.
2월 22일 베식타쉬와의 쉬페르리그 22라운드 홈 경기에서 무슬레라의 눈부신 선방과 셀축 이난의 PK골을 끝까지 지켜내며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 페널티킥은 공교롭게도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갈라타사라이를 떠나 베식타쉬로 임대이적한 다니 눈케우의 파울로 얻어낸 것이었다. 한편, 이 경기에서는 베식타쉬의 골키퍼 젠크 괴넨이 부상당하면서 후반 추가 시간이 11분이나 주어졌고, 세미흐 카야의 페어 플레이가 주목받기도 하였다. 값진 승리를 거둔 갈라타사라이는 승점 44점으로 단독 2위에 오르며 기분좋게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2월 26일 홈에서 열린 첼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제 1차전에서 전반 9분 만에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전반 30분만에 이젯 하이로비치를 불러들이고 예크타 쿠르툴루쉬를 출전시켜 수비 전술의 변화를 꾀한 만치니 감독의 결단으로 점차 점유율을 늘리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였다. 그리고 후반 20분, 셀추크 이난의 코너킥을 오렐리앙 체주가 그대로 차 넣으며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갈라타사라이는 잠그기 전술에 들어간 첼시를 압박하며 역전골을 노렸으나, 결국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너무 이른 시간에 선취골을 허용하며 전반적으로 힘든 경기였으나 다행스럽게도 만회골을 터뜨리며 다음 3월 18일에 있을 2차전 경기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3월 18일 런던에서 열린 2차전에서 전반에만 2골을 실점하며 결국 0-2로 패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3월 14일부터 시작된 무승행진으로 인해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은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데, 4월 1일을 기준으로 페네르바흐체와의 승점차가 10점차로 벌어지면서 사실상 리그 우승을 내준 데다가, 2위 자리도 위태위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만치니 감독이 고집하는 수비적인 전술 또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만치니에게 등을 돌리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따라서 4월 6일 페네르바흐체와의 라이벌전에서 승리하지 못 한다면 만치니는 물론이고, 만치니를 데려온 위날 아이살 단장 또한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월 6일 열린 페네르바흐체와의 더비전에서 베슬리 스네이더르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2위 자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만치니도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4월 12일 시바스스포르와의 경기에서 1-2로 패배하고 급기야 4월 19일 경기에서는 카슴파샤에게 0-4 대패를 당하며 여성 및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18]
5월 7일 튀르키예 쿠파스 결승전에서 베슬리 스네이더르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통산 15번째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리그에서는 베식타쉬와 치열한 경합 끝에 2위 자리를 지켜내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직행권을 획득했다.[19]

2.3. 2014-15 시즌


2013-14 시즌이 끝나자마자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로베르토 만치니를 경질하였고, 한동안 공석이었던 감독직을 체사레 프란델리가 7월 7일부로 부임하였다. 월드컵 기간 중에 트라브존스포르의 키 플레이어 올잔 아든을 영입하며 이적시장에서 첫 발걸음을 디뎠고, FC 포르투로부터 골키퍼 시난 볼라트를 임대영입했다.
8월 25일 열린 쉬페르 쿠파스 경기에서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0-0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패배하였다. 이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펠리페 멜로에게 페네르바흐체의 골키퍼 볼칸 데미렐이 뛰어와 무릎 찍기(!)를 시전하기도 하였다. 결국 경기 후 열린 징벌 위원회에서 볼칸 데미렐은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아스날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그리고 벨기에의 RSC 안데를레흐트와 함께 D조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탈락 위기...가장 만만한 안데를레흐트에게 안방에서 1-1로 비겼고 아스날 원정은 1:4로 발렸고 보루시아에게 안방에서 0-4로 패했기에 사실상 16강행은 좌절이고 안데를레흐트와 유로파 리그를 다투게 되었다. 그러나 안데를레흐트 원정에서도 0-2로 패하며 1무 4패로 마지막 6차전 상관없이 조별 리그 4위를 확정지으며 탈락.
리그에서는 5차전까지 3승 1무 1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페네르바흐체를 득실차로 제쳤는데 10월 18일 리그 6차전에서 안방 경기로 이스탄불 더비를 벌인다. 이 경기에서 후반 43분과 인저리타임에 터진 웨슬리 스네이더의 2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10차전까지 여전히 3위를 기록 중이다.
11월 27일,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경질[20]되었고, 함자 함자오을루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가 뒤를 이었다. 이후 들쭉날쭉하던 갈라타사라이의 경기력은 함자오을루 감독의 지휘 하에 상당히 안정세에 접어들었고, 페네르바흐체와 베식타쉬와 함께 선두 그룹에서 우승을 향한 경쟁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리그 30라운드 이후로 페네르바체와 베식타쉬가 주춤하는 사이에 착실히 승점 3점씩 쌓아올리며 앞서나간 끝에 5월 25일, 그토록 염원하던 리그 20번째 우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튀르키에 쿠파스에서도 결승전까지 무난하게 진출하여 부르사스포르를 상대로 부락 일마즈가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대활약, 3-2로 승리하며 15년만에 더블을 달성했다.

2.4. 2015-16 시즌


라이벌 페네르바흐체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이적 시장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에 반해, 갈라타사라이는 매우 검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루카스 포돌스키 외에는 영입된 선수들의 네임벨류가 워낙 떨어져서 팬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나마 8월 2일 인테르 밀란과의 친선 경기에서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며 1-0 승리를 거두어 세간의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데려오라며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21]
8월 8일 쉬페르 쿠파스에서 부르사스포르를 상대로 야신 외즈테킨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두며 우승했다.
이번 시즌은 그야말로 갈라타사라이 답지 않은 시즌. 같이 상위권 자리를 지키던 두 팀간의 대전에서, 페네르바체에게는 2무, 베식타스에는 2패를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중위권, 하위권팀들은 가둬놓고 패면서 승점을 얻어가야 할 팀이 오히려 비기거나 패하면서 승점을 뺏기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시즌 중반 게다가 FFP에 걸려 다음 두 시즌동안 유럽 대회 출전이 금지되어, 선수들의 의욕도 떨어진 상태. 결국 23라운드 이후 순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중. 리그 6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함자 감독이 사퇴했다. 그나마 FA컵인 튀르키예 쿠파스에서 결승전까지 올라 라이벌 페네르바흐체를 1-0으로 이기며 3년 연속 우승에 17번째 우승을 거두며 컵대회 최다 우승기록을 갱신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차전 홈 경기로 치러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0-2로 완패했다. 아스타나 원정은 2-2로 비기면서 더더욱 진행이 어렵게 되었다. 그냥 3위나 유로파 리그 32강 본선에나 갈 듯 하다. 3차전 홈 경기에서 포돌스키의 골로 벤피카를 2-1로 이기며 첫 승을 거뒀다.하지만 벤피카 원정은 1-2로 설욕당하고 아틀레티코 원정도 0-2로 졌다. 그나마 마지막 6차전이 아스타나와 홈경기인데 비겨도 3위로 유로파리그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진다면 승점 5점에 머물러 6점이 되는 아스타나에게 유로파리그 진출권마저 넘기게 된다. 그런데 가까스로 1-1로 비겨 3위를 겨우 유지해 유로파리그로 나갔으나 라치오에게 패해 일찌감치 32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2.5. 16-17 시즌


베식타쉬와 돌풍을 일으킨 메디폴 바샥셰히르 FK에게 밀리며 리그 3위를 지키고 있다가 막판에 페네르바흐체에게 역전당해 리그 4위로 마무리하여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얻었다. 같은 64점 승점이지만 골득실 차로 페네르바흐체에게 밀렸다.
FA컵인 튀르키스 쿠파스에서도 메디폴 바샥셰히르 FK에게 1-2로 지며 16강에서 탈락했다.

2.6. 17-18 시즌


시즌 초에는 베식타쉬와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와의 경쟁이 있었으나 이고르 투도르 감독이 선수단과의 불화가 극심해지며 [22]결국 경질되고 파티흐 테림감독이 다시 돌아온다.
이고르 투도르의 경질 뒤, 갈라타사라이의 영웅이자 갈라타사라이를 맡는 동안 UEFA 컵 등 리그, 국내 컵 다 합쳐 통산 19번 우승을 시킨 황제 파티흐 테림이 다시 돌아왔다. 오자 마자 팀은 상승세, 거기다가 이고르 투도르가 맡을 당시 못했던 선수들, 특히 경기도 못 뛰던 라이언 동크는 파티흐 테림이 오자마자 터키판 캉테로 진화. 바페팀비 고미스개리 로드리게스는 터키 리그 최고의 공격진이 된다.
FA컵에선 4강에 비교적 약팀인 아크히사르스포르에 패배해 더블의 꿈은 저 멀리... 아크히사르스포르는 결국 결승에 페네르바흐체를 물리치고 FA컵을 우승, 내년시즌 유로파리그 바로 진출.
결국 파티흐 테림의 마법으로 총 75 승점 획득. 17-18 시즌, 전쟁터 같던 이번 시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위는 페네르바흐체 72점. 3위는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특히 바페팀비 고미스는 29 골로 득점왕에다가 한시즌 터키리그 용병 득점 기록을 깼다. (전 기록 보유자는 28골으로 페네르바체의 전설, 알렉스 데 소우자)

2.7. 18-19 시즌


시즌 초반 수비진의 만족스럽지 못한 활약 속에 바샥셰히르에게 손쉽게 리그 우승을 내주는듯 했으나, 후반기 악착같이 따라붙어 승점 동률까지 따라잡더니 33라운드 맞대결에서 2대1 승리를 거두며 2년 연속 우승의 대역전극을 이뤄내었다. 우승의 원동력은 명장 파티흐 테림의 용병술과 헨리 온예쿠루 - 소피앙 페굴리가 이끄는 빠르고 화려한 공격진, 그리고 터키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축신 유네스 벨한다.

모처럼 진출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FC 포르투, 샬케 04와 한 조가 되었는데 로코모티브와 홈 경기 승리를 제외하면 1승1무4패를 거두며 3위 자격으로 유로파행. 유로파 토너먼트에서 만난 벤피카에게도 홈에서 1-2 패배로 포르투갈 원정 무승부에도 조기 탈락했다.

2.8. 19-20 시즌


두 시즌 연속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거며쥐며 라다멜 팔카오, 마리오 르미나[23], 스티븐 은존지[24], 장 미첼 세리[25] 등 네임드 선수들의 연속 영입으로 기존 외국인 선수들과 함께 탈 터키급 스쿼드[26]을 구축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다.
자국 슈퍼컵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즌 시작이 산뜻하나 싶었으나, 리그 원정 개막전 2-0 패배를 시작으로 리그에서 기대 이하 경기력 속 3연속 무승부[27]로 10위까지 추락하며 3년 연속 챔피언을 향한 험난한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스쿼드와 새로 영입된 선수들 간 조직력 향상이 숙제.
13라운드까지 리그 8위인데 1위로 돌풍을 일으킨 시바스스포르와 승점 차가 10점이나 된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 파리 생제르망, 클럽 브뤼헤라는 버거운 상대들과 한 조에 포함되어 브뤼헤와 유로파 티켓을 두고 경쟁할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는데, 1차전 벨기에 원정에서 니가 가라 유로파 대결(...)로 0-0 무승부. 2차전 파리와 홈 경기에서는 무슬레라의 선방쇼로 전반까지 파리의 맹공을 버텨냈으나, 별다른 득점 기회를 못 만들다 마우로 이카르디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0-1 패배을 거두었다. 전통적으로 강했던 레알과 3,4차전이 이번 시즌 유럽 대항전 행보를 결정지을 전망이.... 었는데 레알에게 홈에서 0-1 패배.[28] 원정에서 무려 0-6 대패를 당하면서 조꼴지로 추락해 유로파리그 진출권도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12월 29일 안탈리아스포르전부터 2020년 내내 튀르크컵 포함 전 경기에서 무패행진을 달리며 폭주하고 있다. 특히, 시바스스포르전 무승부 전까지 이어졌던 리그 10연승은 그 백미. 덕분에 팀 순위도 뛰어올라 다시 선두 탈환이 보인다.
리그 초반엔 흔들리더니 시즌 초 임대 왔던 엠레 모르스티븐 은존지 를 본 팀으로 다시 보내버리고 몇몇 선수 보강으로 2020년을 패배 없이 순항중인 상황. 특히 전반기엔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보여주던 미드필더 미첼 세리와 레미나가 갑자기 프리미어리그 수준을 보여주며 중원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결국 리그 6위를 기록하게되지만 2위였던 트라브존스포르UEFA FFP 룰 위반으로 인해 유럽대항전 2시즌 출장 금지 징계를 당하면서 어부지리로 다음시즌 유로파리그 2차예선에 진출하였다.

3. 이스탄불 더비


축구 열기가 원래부터 너무나도 뜨거운 터키이지만,[29] 무엇보다 FIFA에서도 이스탄불 더비를 세계 10대 더비로 넣었고 해외 유명 축구 사이트들에서도 세계 3대 더비 ─ 다른 더비는 엘 클라시코레인저스 FC셀틱 FC올드펌 더비 ─ 에 넣기도 할 정도로 '''장난이 아니다.''' 유튜브만 찾아봐도 이 더비 동영상이 나오는데 의자들을 불태우고[30] 물통들을 마구 집어던지는데 이스탄불 더비 문서만 봐도 나온다...
조국 세르비아,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스페인 프로 리그에서 뛰다 터키에 입성한 후 처음으로 더비전을 치렀던 마테야 케즈만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 내 경기력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그저 살아남은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FK 파르티잔에서 뛴 바 있던 케즈만이 기겁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인데, 바로 베치티 데르비(Вечити дерби/Večiti derbi), 영어로 'Eternal Derby'라는 불리는 FK 파르티잔 vs.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더비는 더비 매치 문서에도 나오듯이 세계적으로 과격한 더비로 알아준다. 게다가 1998~2000년까지 케즈만이 뛸 당시에는 더비 경기에서 서로 마구 총질하고 장난 아닌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겪은 케즈만이 이스탄불 와서 더비를 치르고 저런 반응을 보였다. 허나 터키에서 오래 뛴 선수들은 만성이 되었는지 던진 물통을 척 받아서 그걸 여유롭게 마시며 얼굴에 물을 적시며 더위를 달래는 광경마저 나온다(...).
피해도 많겠지만 그만큼 열기가 엄청나다 보니 덕분에 이들 재정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일례로 2002-03 시즌 11월 6일에 페네르바흐체가 6-0으로 갈라타사라이를 이기자, 페네르바흐체는 재빨리 6-0 이라고 큼직하게 써있는 티셔츠나 머플러 같은 것을 만들어 팔았다. 이 관련 상품들은 불과 이틀동안 4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으며, 페네르바흐체 서포터들은 이스탄불 더비가 있을 때마다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 보란 듯이 입고 한꺼번에 몸을 흔들며 약올렸다. 물론 2004-05 시즌 튀르키예 쿠파스(Turkiye Kupasi) 결승에서 갈라타사라이가 페네르바흐체를 5-1로 이기면서 설욕하자 똑같은 상업성을 발휘했다(...).
2019-20 시즌 후반기 (22라운드), 결국 갈라타사라이가 페네르바체 어웨이 경기에서 20년만에 1-3 대 승리를 거두며 갈라타사라이의 페네르바체 저주를 끝내버렸다. 이젠 페네르바체가 홈에서 4년동안 갈라타사라이를 상대로 무승이 진행 되는 상황... (페네르바체 팬들은 엄청난 상실감에 빠졌다.)

4. 선수



4.1. 명단




4.2. 유명 선수



5. 기타


공식 서포터의 이름은 울트라슬란(ultrAslan ). 전 세계에 지부를 가지고 있는 서포터 단체로,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 ultrAslan
6이라는 숫자와 연관이 많은 팀이다. 페네르바흐체에게 당한 0-6 패배라든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당한 1-6 패배라든가. 그렇다고 마냥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2014년 2월 2일 열린 부르사스포르와의 홈 경기에서는 6-0 대승을 거두었다. 3월 8일에도 아키사르벨레디예스포르를 상대로 6-1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 시작 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Tomahawk Chop'을 들을 수 있다. 페네르바흐체와의 더비 경기에서는 'Fener ağlama(페네르바흐체 울지 마)'를 틀어주는데, 구버전과 신버전의 가사로 나뉘어져 있다. 구버전이 2011-12 시즌 카드쿄이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0-0 무승부로 일궈낸 18번째 우승을 기념하고, 아울러 페네르바흐체를 조롱하는 내용의 가사라면, 신버전은 번역하기에도 민망한 내용의 가사이기 때문에 찾아서 보고 싶은 사람만 번역해서 보는 편이 좋다.
대한민국에는 응원가 김건모송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인은 당시 음질이 좋지 않은 동영상을 통해 노래를 들은 한국 사람들의 귀에 몬데그린으로 들렸기 때문. 원래 제목은 'Galatasaray Şampiyonluk Şarkısı'(갈라타사라이 우승 찬가)다.
이스탄불을 돌아다닐 때(특히 관광지가 많은 유럽 쪽에서), 갈라타사라이 저지를 입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환대해주기도 한다. 오죽하면 축구 월간지 베스트 일레븐에서 보도하길, 어느 한국인 사업가가 이런 정보를 듣고 무역 관계인 터키 바이어가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라는 걸 알고 터키에서 여기 유니폼과 머플러를 사서 하고 다니고 갈라타사라이 통장까지 만들고[31] 갈라타사라이 선수 이름부터 역사나 성적까지 달달 외워서 바이어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몇 시간이고 갈라타사라이 축구 이야기를 하며 전혀 문제없이 거뜬하게 계약을 해냈다는 일화가 나왔었다.
e스포츠에도 투자를 하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2017 시즌에 1부 리그 꼴찌를 차지하여 강등당한 경력이 있다. 그 뒤에도 성적이 별로 시원시원하지 않았는데 결국 프랜차이즈로 인해서 2019년에 다시 참여를 하게 된다고 한다. 2017년에는 페네르바체와의 더비가 이스탄불 더비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꼴찌 결정전이었으나, 2019년에는 과연 어떨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짐봄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안티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특히 페네르바흐체라든가)은 이걸 비틀어서 진존(Cincon)이라고도 부른다. 칭챙총과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이 매우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6. 둘러보기





[1] 짐봄봄.[2] '''노랑빨갱이'''들('''Sarı-kırmızlılar''').[3] UEFA의 규정에 따라 UEFA 주관 대회에서는 스폰서의 이름이 포함 되어 있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리 사미 옌 스포르 콤플렉시'''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4] 1위는 하칸 쉬퀴르[5] 하지만 리즈 유스 출신이던 해리 키웰은 갈라타사라이로 이적, 활약하다가 201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떠났다.[6] 여긴 4년 전만 해도 리그 3위까지 차지하면서 포포투에서 이스탄불 3팀과 트라브존스포르를 빼고 다른 연고지 팀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할 팀이 될 것인가? 기사까지 나왔었다. 그러나...이후로 계속 밀려나면서 전번 시즌에도 겨우 강등을 모면하더니만 올 시즌도 강등 모면에 총력을 다할 지경으로 2010-11시즌도 겨우 15위로 강등을 모면했다.[7] 그래도 사이드로 빠져서라도 끊임없이 활로를 찾으려 노력했다.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중에서 제일 분전한편.[8] 상대 페널티 박스안에서 라모스에게 발을 밟혀 넘어졌기때문에 PK가 나올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시뮬레이션 액션 판정을 받았다[9] 세 골 모두 굉장한 골들이었다. 에부에의 쫄깃한 중거리 슛, 스네이더의 멋진 퍼스트 터치에 이은 수비수 돌파 골, 그리고 드록바의 감각적인 힐 킥 마무리까지.[10] 선제골 실점당시 베일의 프리킥 낙하 지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물론 베일이 너무 잘 차서 웬만한 키퍼도 못 막을 킥이었다.[11] 중단된 상황 그대로 다시 시작했는데 중단 당시 에부에가 치료로 인해 그라운드밖에 있던 것까지 완벽 반영해서 에부에는 잠깐 그라운드 밖에 있다 들어왔다(...). [12] 그라운드 상태도 최악이었는데, 해설자가 남자라면 다 아는 초등학교 시절 비오는 날 축구할 때 운동장과 군대에서 축구할 때 그라운드 상태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3] 갈라타사라이도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겨우 4라운드를 통과했다.[14] 참고로 이 선수는 작년부터 계속 임대로 다른 팀에 떠넘겨지고 있다. 갈라타사라이 → 시바스스포르 → 갈라타사라이 → 샨르우르파스포르 → 갈라타사라이 → 부르사스포르. 심지어 부르사스포르는 세르잔의 친정 팀이다. 부르사 유소년 출신에 부르사에서 우승도 해본 성골 출신. [15] 이번 시즌에 새로 바뀐 용병제도(6+0+4)에 맞게 선수들을 영입하고 방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여름 급작스럽게 발표된 새 용병제도로 인해 로테이션 급 용병선수들을 다수 보유했던 갈라타사라이 입장에서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곧바로 스쿼드를 정리할만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16] 이것은 비단 갈라타사라이뿐만 아니라 베식타쉬, 페네르바흐체 또한 해당되는 공통점이라 말할 수 있다. 이름값 있는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흥행 및 수입을 고려하여 영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키 쉬페르 리그와 그리스 수페르리가를 두고 국내 축구팬들은 '노장 선수들의 마지막 안식처' 정도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17] Metin Oktay, 1936.2.2~1991.9.13 '무관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갈라타사라이의 레전드 스트라이커로, 통산 354경기에 출전하여 총 314골을 넣었으며 갈라타사라이의 전용 트레이닝 센터 이름이 바로 이 선수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18] 4월 6일 페네르바흐체와의 더비 경기에서 팬들이 보여준 난폭한 태도에 대해 터키축구협회가 '4월 19일 카슴파샤와의 홈 경기를 무관중 또는 여성 및 12세 이하 어린이 무료입장으로 치룬다'라는 징계를 내린 바 있다[19] 이번 시즌 챔피언은 페네르바흐체이나, 승부조작으로 인한 유럽축구연맹의 징계로 인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 자격이 박탈되었다[20] 단순히 터키 축구팬들과 갈라타사라이 수뇌부의 냄비근성이라고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챔피언스 리그의 졸전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쉬페르 리그로 승격된 발르케시르스포르나 바샥셰히르같은 팀들을 상대로 각각 0-2, 0-4 참패를 당한 것만 보더라도 프란델리 체제의 갈라타사라이가 얼마나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여줬었는지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21] 이는 지난 5월 구단주로 선출된 두르순 외즈벡 구단주의 공약 때문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데려오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더 무서운 건 즐라탄의 페이스북 댓글의 90% 이상이 갈라타사라이로 오라는 댓글이라는 점이다.[22] 이때 태업 논란이 좀 많았다.[23] 사우스햄튼으로부터 임대[24] AS 로마로부터 임대[25] 풀럼으로부터 임대[26] 레알 마드리드클럽 브뤼헤의 챔스 조별리그 2라운드를 중계하던 국내 해설진들은 레알의 조별리그 다음 상대인 갈라타사라이를 언급하며 터키 팀이 아닌 '''다국적 군단'''이라고 평가하였다.[27] 페네르바체와 홈 0-0 무승부 포함[28] 그나마 이 경기에서 계속 레알을 두들겨 패며 득점 기회를 여러 번 만들었으나 상대 키퍼는 하필 야신 모드를 켜버린 티보 쿠르투아였다...[29] 이을용이 트라브존스포르에서 활약할 당시 열기도 뜨겁지만, 경기 끝나면 서둘러 퇴장해야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물병이나 별별 물건들이 경기장 안으로 던져진다고. 심지어 화염병이나 폭죽까지 날아들며(...), 가끔은 총도 쏘아버린다.[30] 그래서 터키 축구 경기장에 가보면 깨끗한 의자들을 매해 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31] 마찬가지로 베식타쉬나 페네르바흐체도 통장이 있다. 이들이 은행을 경영하는 게 아니라 데니즈방크(Denizbank)라는 은행과 합작해서 팀 로고가 들어간 통장을 만들어 주는데, 통장을 만들 경우 나오는 카드로 각 구단의 홈 경기 예매 시, 할인 혜택을 준다. 이외에도 아베아(Avea)라는 통신사와 합작해서 운영하는 핸드폰 요금 제도도 있고, 심지어 과자(치토스)에도 팀 로고가 새겨져 있을 정도로 터키인들에게 축구 클럽은 삶의 일부와도 같다.